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의 국가는 어디일까요? 바로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은 청동기를 배경으로 단군이 세웠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인 환웅의 이야기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더 들어가서 고조선의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의 본래 호칭은 단군왕검인데 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을 왕검은 왕이나 지배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단군왕검은 제사와 정치를 함께 담당하는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제정일치 사회라고 하죠. 곧 단군왕검은 한 사람의 호칭이 아닌 최고 지도자에게 붙던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고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조선은 4세기경에 요령지방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잇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 고조선 서쪽에 있는 연나라 지역까지 지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하자 위만이라는 사람이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들어왔습니다. 위만은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에게 자신들이 고조선의 영토 안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준왕은 위만 에게 관직을 주고 서쪽 국경을 수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위만은 자신의 세력을 키운 뒤 기원전 194년에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으로 쳐들어가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위만조선이 설립된 겁니다.
이 위만조선을 두고 중국 역사이냐 우리의 역사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명백히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위만은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뒤에도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고 하였고, 당시 고위 관리 중에도 조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위만조선은 단군의 고조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사회상을 보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8개조법이 있습니다. 8개조법은 고조선을 다스리던 일종의 형법, 범죄와 관련된 법률입니다.
그 예로 1.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2.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3.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등 8개조법의 내용을 통해 당시 고조선 사람들이 생명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을 다치게 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할 경우 그에 대한 대가, 즉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조선이 계급사회이며 사유 재산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항목에서는 남성 중심, 즉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였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고조선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끝은 있었을 겁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고조선이 멸망했는지 알아보면 방금 얘기했던 위만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조선을 장악한 위만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며 주위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또 한반도 남부지방의 진의 여러 소국과 한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경제적으로도 강성해졌습니다.
이렇게 강성해지는 고조선에 불안함을 느낀 한나라는 고조선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이 터지는데 고조선이 멸망하기 20년 전인 기원전 128년 고조선의 영향 아래 있던 예국의 남녀 20여 만명이 한나라에 망명했습니다. 한나라는 이 지역에 창 예군이라는 행정구역을 설치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조선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음을 감지한 한나라 무제는 섭하라는 사신을 고조선으로 파견하고 고조선에 도착한 섭하는 우거왕을 만나 한나라의 지위를 이용하여 협박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우거왕은 순순히 한나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섭하는 빈손으로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는 황제의 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사형에 처했는데 이를 두려워한 섭하는 배웅 나온 고조선의 관리를 살해하고 돌아갑니다. 이에 분노한 고조선도 가만있지 않았고 섭하가 통치하고 있던 지역에 특공대를 보내 섭하를 살해해버립니다. 이 섭하 사건은 고조선을 침략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한 무제에게 좋은 명분이 되어 주었습니다.
결국 한나라가 육지와 바다 두 갈래로 대병력을 보내 고조선을 침략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은 요동 지방에서 한나라군을 크게 무찌르며 막아냈고 그 후에도 약 1년 동안 한나라군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며 고조선의 지배층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강화를 맺자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우거왕이 강화를 주장하던 이들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신하들이 한나라에 맞서 싸웠지만 수도인 왕검성은 한나라에 의해 함락되었고 결국 기원전 108년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국가인 고조선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다스리기 위해 낙랑군, 임둔군, 현도군, 진번군이라는 네 개의 행정 구역을 설치했습니다. 이것을 한사군이라고 부릅니다. 이 한사군은 점차 세력이 약화하며 결국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던 낙랑군이 313년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멸망하면서 비로소 중국 세력은 우리 영토에서 완전히 쫒겨나게 됩니다.
한편 멸망한 고조선의 유민들은 주변으로 흩어져 기존의 나라에 망명하거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었고 각자 다시 발전을 해나갑니다. 바로 부여, 동예, 옥저, 마한, 진한, 변한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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